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리아농 조약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트리아농조약.jpg|width=100%]]}}}|| || [[컨트리볼]] 만평 || [[제1차 세계 대전]]이 끝난 후 [[협상국]]과 [[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]] 중 [[성 이슈트반 왕관령|헝가리 왕국]]이 체결한 조약. 협상국은 각각의 조약을 통해 패전한 [[동맹국]]의 영토를 분할했다. * [[독일 제국]]: [[베르사유 조약]] * [[국가협의회에 대표된 왕국들과 영토들|오스트리아 제국]]: 1918년 9월 10일에 [[생제르맹 조약]]으로 단독 강화 후 이중제국을 해체했으며, [[미국]]과는 1921년 8월 21일에 평화협정을 체결했다. * 헝가리 왕국: __트리아농 조약__ * [[불가리아 왕국]]: [[뇌이 조약]]으로 그리스에 서트라키아를 할양했고, 세르비아에 극소량의 마케도니아 영토를 할양했다. * [[오스만 제국]]: 무드로스 정전협정으로 1918년 10월 30일에 항복했다. 그 후 [[세브르 조약]]을 체결, 아나톨리아 일부 지역만을 건사할 뻔했지만 [[튀르키예 독립전쟁]]의 결과로 [[로잔 조약]]에서 지금의 영토를 보장받고 [[튀르키예|튀르키예 공화국]]이 세워지며 멸망한다. 그리고 1939년에 알렉산드레타가 있는 하타이 지방이 추가로 튀르키예에 병합된다. [[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]]이 분할되면서 헝가리도 대규모 영토 손실이 있었다. 헝가리는 조약의 체결로 인해 72%의 영토를 잃어[* 72%로 줄어든 게 아니라 72%가 아예 줄었다. 후술할 인구도 마찬가지] 전쟁 전 325,441km^^2^^에 달하던 헝가리의 영토는 93,073km^^2^^가 되었으며 64%의 인구를 잃어 2090만 명에서 760만 명이 되었다. 그리고 국경의 변화로 1070만 명의 헝가리인 중 31%인 330만 명이 헝가리 국경 외부에서 살게 되었는데, 헝가리 고유의 영토라고 할 수 있는 부분까지 민족 구성을 핑계로 [[루마니아 왕국]]이나 [[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|체코슬로바키아]], [[세르비아 왕국(1882년~1918년)|세르비아 왕국]] 등으로 넘어갔기 때문이었다.[* 물론 이 3국은 헝가리의 영토를 받는 대가로 헝가리가 내야 할 전쟁 배상금 일부를 대신 내야 했다.] 특히 [[트란실바니아|에르데이]](Erdély)의 [[세케이인|헝가리계 민족]]들은 루마니아인들 사이에 포위당한 형국이 되었고, 같은 패전국인 [[오스트리아 제1공화국|오스트리아]]에게도 [[쇼프론]]을 제외한 [[부르겐란트|외르비데크]](Őrvidék)를 빼앗겨야 했다. 헝가리 밖의 헝가리인들 중 1921년까지 헝가리 영내로 이주하지 않은 사람은 트리아농 조약에 따라 헝가리 국적이 박탈되고 거주 국가의 국적이 부여되었다. 또한 [[철도]]에 있어서도 타격이 매우 컸는데, 국토 여기저기로 뻗어 있던 철도망의 상당 부분을 상실하고 [[부다페스트]]를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뻗어나가는 노선만 남게 되었다. 또한 복선 철도의 부설도 조약으로 금지되어 물류 수송에도 상당한 지장을 주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